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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민추위 사건 뜻과 깃발 사건, 김근태·박종철 사건까지

by 머니phd 2026. 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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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민추위 사건 뜻과 깃발 사건, 김근태·박종철 사건까지

 

 

서울대학교 민추위 사건은 1980년대 전두환 정부 시절 발생한 대표적인 학생운동 관련 공안사건 가운데 하나다. 정식 명칭은 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이며, 민추위가 발행한 기관지 이름을 따 ‘깃발 사건’이라고도 불린다.

이 사건은 단순히 서울대 학생 몇 명이 처벌받은 사건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후 김근태 고문 사건과 연결됐고, 민추위 관련 수배자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까지 발생하면서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배경 가운데 하나가 됐다.

 

1. 서울대학교 민추위는 어떤 조직이었나


최우혁열사

민추위는 ‘민주화추진위원회’의 줄임말이다.

1984년 서울대학교 학생운동 세력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비공개 조직으로, 당시 전두환 군사정권에 맞선 민주화운동을 추진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삼았다.

당시 서울대 학생운동은 공개적인 학생회 활동뿐 아니라 여러 형태의 비공개 조직을 통해 활동하고 있었다. 민추위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만들어졌으며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연결하려는 움직임도 보였다.

민추위는 기관지 《깃발》을 제작해 배포했는데, 이 때문에 민추위 사건을 ‘깃발 사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깃발》에는 당시 한국 사회의 정치·경제 구조와 학생운동의 방향, 노동운동과의 연대 필요성 등에 관한 비교적 급진적인 내용이 담겼다.

 

2. 민추위 사건은 왜 발생했나


1985년 학생운동 확산시기

민추위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된 것은 1985년 학생운동이 크게 확산되던 시기였다.

특히 1985년 5월 서울대 등 여러 대학 학생들이 서울 미국문화원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인 사건이 발생했다.

학생들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 미국의 책임 문제 등을 제기하며 약 3일 동안 농성을 이어갔다.

이 사건 이후 수사기관은 대학 내 학생운동 조직을 대대적으로 추적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민추위 조직이 집중적인 수사 대상이 됐다.

1985년 하반기부터 민추위 관계자들이 잇따라 체포됐고, 검찰은 같은 해 10월 민추위 관계자들을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당시 수사기관은 민추위를 단순한 민주화운동 조직이 아니라 사회주의적 성격을 가진 이적 조직으로 규정했다.

 

민추위 사건 주요 흐름

시기 주요 내용
1984 서울대 학생운동 세력을 중심으로 민추위 조직
1984~1985 기관지 《깃발》 제작·배포
1985 5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농성 사건
1985 하반기 민추위 관계자 대규모 체포·수사
1985 10 관련자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구속·기소
이후 고문·강압수사 공안조작 논란 지속

 

 

3. 왜 ‘깃발 사건’이라고 부르나


민추위는 내부 기관지로 《깃발》이라는 유인물을 제작했다.

《깃발》에서는 당시 학생운동이 단순한 학내 민주화운동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노동운동 및 사회 변혁운동과 연결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당시 수사기관은 《깃발》의 내용을 민추위를 이적단체로 판단하는 주요 근거 가운데 하나로 사용했다.

때문에 언론과 수사기관에서는 민추위 사건을 기관지 이름을 따 ‘깃발 사건’으로 부르기도 했다.

다만 민추위의 정치적 성격과 별개로 이후 수사 과정에서 불법연행과 고문, 강압수사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건의 성격에 대한 평가도 크게 달라졌다.

 

 

4. 민추위 사건과 김근태 고문 사건


서울대TV 자료화면

민추위 사건은 당시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이른바 민청련 수사로도 확대됐다.

민청련 의장이었던 김근태는 1985년 수사기관에 연행된 뒤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김근태는 전기고문과 물고문 등 심각한 고문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근태 고문 사건은 이후 전두환 정부 시절 국가기관의 고문과 인권침해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건이 됐다.

특히 김근태가 자신을 고문한 수사관들의 이름과 고문 과정을 외부에 알리면서 당시 대공수사기관의 고문 실태가 사회적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5. 민추위 사건과 우종원 의문사


민추위 관련 인물 가운데 서울대 학생 우종원의 죽음도 오랫동안 논란이 됐다.

우종원은 민추위 홍보위원회에서 활동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수배 중이던 1985년 10월 경부선 철로 주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그의 죽음을 두고 수사기관의 추적이나 고문과 관련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도 사건을 조사했지만 사망 경위와 국가기관 개입 여부를 명확하게 밝혀내지는 못했다.

따라서 우종원 사건은 현재까지도 당시 학생운동 관련 대표적인 의문사 사건 가운데 하나로 거론된다.

 

 

6.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는 어떤 관계인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서울대 민추위 사건에서 가장 중요하게 봐야 할 부분 가운데 하나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의 연결성이다.

민추위 사건 이후 경찰은 관련 수배자들을 장기간 추적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한 명이 서울대학교 학생운동가 박종운이었다.

경찰은 박종운의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 주변 인물들을 조사했고, 그 과정에서 박종운의 서울대 후배였던 박종철을 연행했다.

1987년 1월 14일 박종철은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던 도중 물고문을 당해 숨졌다.

경찰은 처음에는 박종철이 조사 과정에서 갑자기 쓰러졌다는 취지로 사건을 축소하려 했지만 이후 고문치사 사실이 드러났다.

유명한 이른바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경찰 발표 역시 이 사건 은폐 논란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남았다.

 

 

7. 민추위 사건에서 6월 민주항쟁까지


민추위 사건을 하나의 독립된 공안사건으로만 보면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흐름을 이해하기 어렵다.

사건들은 서로 연결돼 있었다.

 

서울대 민추위 활동

민추위·깃발 사건 대규모 수사

학생운동·재야 민주화운동 인사 수사 확대

김근태 고문 사건

민추위 관련 수배자 박종운 추적

박종철 불법 연행 및 고문치사

고문치사 은폐 사실 폭로

1987년 6월 민주항쟁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이후 이한열 사망 사건 등과 함께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촉발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결국 민추위 사건은 1980년대 중반 학생운동과 공안수사, 국가폭력 그리고 민주화운동이 어떤 방식으로 연결돼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8. 민추위는 실제로 급진적인 조직이었나


민추위 사건을 볼 때 한 가지 주의해야 할 부분이 있다.

민추위를 단순한 일반 학생회 조직이나 평범한 민주화 동아리로 보는 것도 정확하지 않다.

당시 민추위와 《깃발》에서는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의 결합, 사회구조 변화 등을 주장했고 일부에서는 당시 학생운동권의 민족민주혁명론 등 급진적인 사회변혁 논리도 나타났다.

따라서 당시 정부가 민추위의 정치적 성격을 문제 삼았던 데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었다.

그러나 조직의 정치적 성향과 국가기관의 불법수사 문제는 별개의 문제다.

어떠한 정치적 주장을 했더라도 불법연행이나 고문, 허위자백 강요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후 과거사 조사에서도 민추위 사건 수사 과정에서 발생한 국가기관의 인권침해 문제가 다시 확인됐다.

 

 

9. 민추위 사건이 중요한 이유


서울대 민추위 사건이 지금도 한국 현대사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 첫째, 1980년대 학생운동이 단순한 대학 내부 운동에서 노동운동·사회운동으로 확장되던 과정을 보여준다.
  • 둘째, 국가보안법과 대공수사를 중심으로 운영됐던 당시 공안수사의 실태를 보여준다.
  • 셋째, 민추위 수사가 김근태 고문 사건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연결되면서 결국 1987년 민주화운동의 중요한 배경이 됐다.

따라서 민추위 사건은 한 대학의 학생운동 사건이라기보다는 5공화국 말기 민주화운동과 국가 공안기관의 충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자주 묻는 질문


서울대 민추위 사건과 깃발 사건은 같은 사건인가요?

대체로 같은 사건을 의미한다. 민주화추진위원회가 발행했던 기관지 이름이 《깃발》이어서 민추위 사건을 ‘깃발 사건’이라고도 부른다.

 

민추위는 서울대학교 학생 조직이었나요?

서울대학교 학생운동 세력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비공개 조직이다. 당시 학생회 등 공개 조직과는 별도로 활동했다.

 

민추위 사건과 김근태는 어떤 관계인가요?

민추위 수사가 재야 민주화운동 세력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민청련 의장이었던 김근태도 수사를 받았으며,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심각한 고문을 당했다.

 

박종철 사건도 민추위 사건과 관계가 있나요?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있다. 경찰이 민추위 사건 관련 수배자였던 박종운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박종철을 연행했고, 조사 과정에서 박종철이 고문으로 사망했다.

 

민추위 사건은 조작 사건인가요?

민추위라는 조직과 학생운동 활동 자체는 실제 존재했다. 다만 수사 과정에서 고문·강압수사 등 중대한 인권침해가 있었고, 당시 정부가 사건을 이적·용공 사건으로 규정한 방식에 대해서도 이후 지속적인 재평가가 이루어졌다. 따라서 조직의 실제 활동과 국가기관의 수사·공안 프레임 문제를 구분해서 보는 것이 필요하다.

 


출처

  • 서울대학교 기록관 민주화운동 관련 기록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 자료
  • 서울대학교 박종철 관련 기록
  • 당시 민추위·민청련 민주화운동 관련 언론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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