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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회 부관참시 | 왕과 사는 남자 한명회 초상화·묘·단종·세조·수양대군 관계 부관참시 뜻 총정리

by 머니phd 2026.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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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회 부관참시 ❘ 왕과 사는 남자 한명회 초상화 묘 단종 세조 수양대군 관계 총정리

 

 

 

설 대목 극장가를 500만 관객으로 강타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악역 한명회. 수양대군의 장자방(張子房)으로 불리며 조선 최고 권력자 자리를 누렸지만, 죽어서도 무덤이 파헤쳐진 조선사 최대의 킹메이커, 한명회의 생애와 부관참시 이유, 초상화·묘소 정보, 영화 속 캐릭터까지 총정리했습니다.

 

 

CHAPTER 1 — 한명회는 누구인가 : 기본 인물 정보

한명회(韓明澮, 1415~1487)는 조선 전기 최고의 정치 책사이자 훈구 대신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무려 2,300여 건이나 이름이 등장할 만큼 당대 조선 정치의 중심에 있던 인물로,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좌에 오르는 계유정난(1453)을 사실상 기획·실행한 '조선 최대의 킹메이커(King Maker)'입니다.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자준(子濬), 호는 압구정(狎鷗亭)·사우당(四友堂)이며, 시호는 충성(忠成)입니다. 별칭으로 '칠삭동이(7개월 만에 태어난 조산아)'라고도 불렸습니다. 할아버지는 명나라로부터 국호 '조선'을 받아온 개국공신 한상질(韓尙質)이며, 가문 자체는 명문이었지만 한명회 대에 이르러 집안이 기울어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매우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수차례 과거 시험에 응시했으나 거듭 낙방하였고, 38세가 되던 1452년(문종 2년)에 겨우 음서(蔭敍, 조상의 공으로 관직에 나가는 제도)로 경덕궁 관리직이라는 말단직을 얻었습니다. 이 시점만 해도 누가 그를 조선 최고 권력자의 스승이자 설계자로 보았겠습니까. 하지만 친구 권람(權擥)의 소개로 수양대군을 만나게 되면서, 역사는 완전히 뒤바뀌기 시작했습니다.

항목 내용
생몰연도 1415년(태종 15) ~ 1487년(성종 18), 향년 72세
본관 / 자 / 호 청주(淸州) / 자준(子濬) / 압구정(狎鷗亭)·사우당(四友堂)
시호 / 별칭 충성(忠成) / 칠삭동이
최고 관직 영의정(領議政)
공신 책봉 정난공신 1등·좌익공신 1등 등 총 4회 공신
장순왕후(예종 비) · 공혜왕후(성종 비)
사후 1504년 갑자사화 때 부관참시 → 중종 대 신원(伸寃)

 

CHAPTER 2 — 수양대군과 한명회의 관계 : 계유정난의 설계자

수양대군은 처음 한명회를 만난 순간 "마치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 같다"며 반색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첫 만남 자리에서 한명회는 자신의 책략을 모두 털어놓았고, 수양대군은 그를 두고 한(漢)나라 건국 공신 장량(張良)에 빗대어 "그대는 나의 장자방(張子房)이다"라고 극찬했습니다.

 

한명회는 수양대군의 책사로서 본격적으로 능력을 발휘합니다. 그의 핵심 역할은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 문종·단종 대의 집권 체제에 불만을 품은 비주류 인물들을 포섭하는 것. 둘째, 무장 홍달손(洪達孫)·양정(楊汀) 등 무사 30여 명을 수양대군의 심복으로 끌어들이는 것. 셋째, 정적인 김종서(金宗瑞)와 안평대군(安平大君) 세력의 내부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었습니다.

 

드디어 1453년(단종 1년) 10월 10일 밤, 계유정난이 일어납니다. 수양대군은 김종서의 집으로 찾아가 철퇴로 쓰러뜨린 후, 황보인·조극관 등 반대파 대신들을 잇달아 제거하고 경복궁을 장악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명회가 작성한 살생부(殺生簿)가 활용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정적의 이름이 빨간 줄로 그어진 이 명단이 실질적인 처형 지침서가 된 것입니다.

 

계유정난의 성공으로 가장 극적인 인생 역전을 이룬 인물이 바로 한명회입니다. 하루아침에 당상관으로 승진하고 정난공신 1등에 책봉되었습니다. 그야말로 '무명의 말단직 관리'에서 '국가 권력의 핵심 설계자'로 단번에 비상한 것입니다. 이후 세조가 단종의 양위를 받아 왕위에 오르자, 한명회는 다시 좌익공신 1등으로 책봉되며 출세 가도를 달렸습니다.

📌 계유정난(癸酉靖難) 핵심 정리

발생 : 1453년(단종 1년) 10월 10일 / 주도 : 수양대군 + 책사 한명회 / 결과 : 김종서·황보인 등 반대파 숙청, 수양대군이 실권 장악 → 2년 후 단종에게 왕위 양위 강요 → 세조 즉위

수양대군과 한명회의 관계 : 계유정난의 설계자

 

 

CHAPTER 3 — 단종과 한명회 : 어린 왕을 몰아낸 과정

단종(端宗, 1441~1457)은 세종대왕의 적장손으로, 부왕 문종(文宗)이 재위 2년 3개월 만에 요절하면서 1452년 불과 12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습니다. 세종은 생전에 손자를 몹시 걱정하며 황보인·김종서·성삼문 등에게 "왕세손을 지켜달라"는 부탁을 남겼으나, 아무도 수양대군의 무모한 쿠데타를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계유정난 이후, 어린 단종의 보호자와 지지 세력 대부분이 하루아침에 살해당하거나 유배를 떠났습니다. 1455년, 단종은 한명회와 권람 등의 강요에 의해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양위(禪位)'하는 형식으로 상왕(上王)으로 밀려났습니다.

1456년에는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 등 사육신(死六臣)의 단종 복위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때도 한명회가 핵심적 역할을 합니다. 연회 자리의 낌새를 미리 눈치채고 운검(雲劒) 무사들의 입장을 차단하여 복위 계획을 사전에 무산시킨 것입니다. 이 공으로 한명회는 세조의 더욱 두터운 신임을 얻었습니다.

 

1457년, 금성대군(錦城大君)이 순흥에서 다시 단종 복위를 시도하다 발각되자, 세조는 단종(이 때 이미 노산군으로 강등)에게 사약을 내렸습니다. 영월 청령포에서 16세의 어린 생을 마감한 단종의 죽음 뒤에는, 이 모든 판을 짜고 합리화한 한명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었습니다.

역사 프로파일러들은 이 일련의 과정을 "한명회가 치밀하게 설계하고 국가 권력으로 집행한 사법 살인"으로 평가하기도 합니다. 단종에게 한명회는 단순한 정적이 아니라, 왕좌와 목숨 모두를 앗아간 운명의 설계자였습니다.

 

CHAPTER 4 — 세조 치세 최고 권신 : 영의정·국구의 영화

세조 즉위 이후 한명회는 도승지 → 이조판서 → 병조판서 → 우의정 → 좌의정 → 영의정으로 거침없이 승진했습니다. 그리고 두 딸을 각각 왕실에 시집보내는 데 성공합니다. 첫째 딸은 예종(睿宗)의 원비 장순왕후(章順王后)가 되었고, 둘째 딸은 성종(成宗)의 원비 공혜왕후(恭惠王后)가 되었습니다. 이로써 한명회는 세조의 최측근이자 왕의 장인이라는 최고의 지위를 동시에 누리게 됩니다.

 

그가 한강변(現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세운 정자 압구정(狎鷗亭)은 당대 권력과 부의 상징이었습니다. '물새들이 희롱하는 정자'라는 뜻으로, 조정의 문사들이 앞다투어 찾아와 예찬시를 지을 만큼 명소였습니다. 중국에까지 소문이 나 명나라 사신들이 구경하러 올 정도였고, 오늘날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지명이 바로 여기에서 유래합니다.

 

한명회는 스스로를 이렇게 자평했습니다. "젊어서는 종묘와 사직을 위하여 몸을 바치고(靑春扶社稷), 늙어서 머리가 하얗게 되면 강가에 누워 세상을 관조한다(白首臥江湖)." 그러나 그는 끝까지 은퇴하지 못했습니다. 세조가 1468년 승하한 이후에도 원상(院相)으로서 어린 왕들을 보필하며 성종 대까지 약 20년간 국정에 관여했습니다. 조선왕조 전체를 통틀어 이토록 오랜 기간 최고 권력을 누린 신하는 드물었습니다.

📌 한명회가 4번 공신에 책봉된 이유

① 정난공신 1등(계유정난, 1453) → ② 좌익공신 1등(세조 즉위, 1455) → ③ 적개공신(이시애 난 진압, 1467) → ④ 좌리공신(성종 즉위 보좌, 1471). 단일 인물이 동일 왕조에서 4번이나 최고 공신에 오른 것은 사실상 전무후무한 기록입니다.

한강변(現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세운 정자  압구정(狎鷗亭) 은 당대 권력과 부의 상징

 

CHAPTER 5 — 한명회 부관참시 : 갑자사화와 비참한 최후

한명회는 1487년(성종 18년) 향년 72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세조의 묘정(廟庭)에 배향되며 명예로운 죽음을 맞이하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그를 이대로 두지 않았습니다.

 

한명회가 세상을 떠난 지 17년이 지난 1504년(연산군 10년), 조선 역사상 가장 잔혹한 사화 중 하나인 갑자사화(甲子士禍)가 일어납니다. 연산군은 자신의 생모 폐비 윤씨(廢妃 尹氏)가 1482년 사약을 받고 죽은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고, 이 죽음에 관련된 자들을 모조리 처단하기 시작했습니다.

 

연산군의 조사 결과, 성종의 후궁 폐출 논의 당시 한명회가 반대하지 않고 사실상 동조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던 한명회에게는 부관참시(剖棺斬屍)가 명령되었습니다.

 

부관참시 뜻은 이미 죽은 사람의 무덤을 파헤쳐 관을 꺼내고 시신을 참수하여 저잣거리에 목을 내거는 사후 극형입니다. 1504년 7월, 한명회의 무덤이 파헤쳐졌고, 시신의 목이 베어져 해골이 부서진 채 한양 저잣거리에 효수(梟首)되었습니다. 천안 묘역의 석물들도 훼손되었습니다. 한때 조선 최고 권력자의 위엄은 이렇게 처참하게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1506년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연산군이 폐위되자, 한명회는 다시 신원(伸寃)되어 관작이 복구되었습니다. 후손들이 묘역을 다시 정비하고 땅 속에 묻혀 있던 신도비도 다시 세웠습니다.

구분 내용
부관참시 시기 1504년(연산군 10년) 7월 — 사망 17년 후
부관참시 이유 폐비 윤씨(연산군 생모) 사사(賜死) 관련 — 갑자사화
집행 내용 무덤 파헤침 → 시신 참수 → 해골 부서짐 → 한양 저잣거리 목 효수
신원(復權) 1506년 중종반정 직후 — 관작 복구, 묘역 재정비

한명회의 부관참시는 권력의 무상함을 보여주는 역사적 교훈으로 자주 인용됩니다. 세조의 '장자방'으로 칭송받으며 조선 최고의 권세와 부를 누렸던 인물이, 죽어서 17년 후 무덤이 파헤쳐지는 최악의 형벌을 받았습니다. 생전의 주군 세조보다 19년이나 더 살며 성종 대까지 권세를 누렸지만, 새로운 권력 앞에서는 사후의 명예도 보장받지 못했습니다.

 

CHAPTER 6 — 한명회 초상화 · 묘소 : 천안 충모사

한명회의 묘소는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속창리에 위치합니다. 이 지역은 현재 천안시 권역이지만, 조선 시대에는 청주목(淸州牧)에 속하던 곳으로, 한명회가 평소 "나의 선조 고향은 청주요, 죽거든 청주 땅에 묻어달라"고 했던 유언을 반영한 것입니다.

 

묘역에는 한명회와 부인 여흥 민씨의 묘소를 비롯해, 신도비(神道碑)·재실·사당인 충모사(忠募祠)가 함께 갖춰져 있습니다. 신도비는 1488년(성종 19년) 당대 최고의 문장가 서거정(徐居正)이 비문을 지었습니다. 2024년에는 천안 한명회 묘역이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체계적인 보호·관리를 받게 되었습니다.

 

현재 묘역 석조물은 15~16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담장 형태로 묘역을 감싼 석축 구조와 무인상(武人像)을 2구씩 쌍으로 배치한 방식이 특징입니다. 부관참시 당시 훼손되었던 묘역은 1506년 중종 때 신원된 이후 후손들이 다시 정비하였습니다.

 

또한 2009년에는 도굴당했던 한명회 지석(誌石)이 발견·회수되었습니다. 지석은 공주 학봉리요지에서 철화분청사기로 제작되었으며, 가로 20.5~23㎝, 세로 31~32.5㎝ 크기의 지석 24점으로 구성된 완전한 형태입니다. 15~16세기 지석 중 가장 완벽한 구성을 갖춘 희귀 자료로 평가받아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천안 박물관에 기탁 소장되어 있습니다.

 

한명회의 초상화(肖像畵)는 현재 확인된 원본이 없는 상태로, 영화·드라마에서의 이미지는 모두 기록에 근거한 재현입니다. 다만 흥미로운 사실은, 한명회가 '칠삭동이'라는 별명 탓에 각종 사극에서 왜소하고 볼품없는 외모로 묘사되어 왔지만, 실제 기록에는 그가 '키가 크고 잘생겼다'고 전합니다. 이는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 체격 좋은 배우 유지태를 캐스팅한 근거이기도 합니다.

📌 한명회 묘역 방문 정보

위치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속창리 11-1
경부고속도로 상행 방향에 인접해 있어, 자동차로 이동 시 도로에서도 묘역이 보입니다. 충남도 기념물 지정 문화재로, 천안 시티 투어 주요 거점 중 하나입니다.

천안시 - 충모사

 

 

CHAPTER 7 —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속 한명회 (유지태)

2026년 2월 4일 개봉한 장항준 감독의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개봉 3주 만에 누적 관객 500만 명을 돌파한 설 대목 최고 흥행작입니다. 폐위된 단종(박지훈 분)이 강원도 영월 청령포 유배지에서 촌장 엄흥도(유해진 분)와 마을 사람들과 인간적 유대를 쌓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이 영화에서 한명회는 배우 유지태가 연기하며, 당대 최고 권력자이자 세조 정권의 실세로서 극 전체의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핵심 인물로 등장합니다. 장항준 감독은 영화에서 세조를 직접 등장시키지 않은 이유에 대해 "한명회가 세조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유지태는 이 역할을 위해 관자놀이에 특수 테이핑을 해 매서운 눈초리를 만들고 체형을 더 키웠습니다. 기존 사극에서 왜소하고 음흉하게 묘사되던 한명회의 전형적 이미지를 탈피해, 압도적인 카리스마와 위압감을 갖춘 새로운 한명회 캐릭터를 완성했습니다. 특히 엄흥도 앞에서 가림막을 거칠게 뜯어내며 등장하는 장면에서 그 위용이 극대화되어, 관객들 사이에서 "영화 사상 가장 강렬한 한명회"라는 호평을 받았습니다.

 

영화 속 한명회는 단종의 유배지로 청령포를 낙점하는 장면부터 등장합니다. 엄흥도가 군수에게 "우리 마을에도 죄인을 보내달라"고 청하는 자리에서, 한명회는 단종의 유배지로 청령포를 낙점합니다. 이후 금성대군의 복위 시도를 진압하고 마침내 단종에게 사약을 내리는 과정까지, 한명회는 극의 거대한 악의 축으로 기능합니다.

구분 내용
영화 제목 왕과 사는 남자 (The King's Warden)
개봉일 2026년 2월 4일
감독 장항준
한명회 역 유지태
단종 역 박지훈
엄흥도 역 유해진
배급 쇼박스
흥행 (2월 22일 기준) 누적 관객 500만 명 돌파

영화는 한명회와 엄흥도를 극명하게 대비시킵니다. 한명회는 권력의 정상에서 단종의 운명을 좌우하는 인물, 엄흥도는 흙의 온도에서 인간을 붙잡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역사는 권력자의 기록을 남기지만, 600년이 지난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어린 왕의 마지막을 사람답게 지켜낸 엄흥도의 손길이라는 점이 영화의 핵심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A

Q. 한명회 부관참시를 당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1504년 갑자사화 때 연산군의 생모 폐비 윤씨(廢妃 尹氏)의 사사(賜死) 사건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부관참시를 당했습니다. 당시 한명회는 이미 1487년에 사망한 상태였으나, 연산군은 사후 17년이 지난 그의 무덤을 파헤쳐 시신을 참수하고 한양 저잣거리에 목을 효수하도록 명령했습니다. 이후 1506년 중종반정으로 신원(伸寃)되었습니다.

Q. 한명회와 수양대군(세조)의 관계는 어떻게 되나요?

한명회는 수양대군의 핵심 책사(책략가)로, 계유정난을 사실상 기획하고 실행한 인물입니다. 수양대군은 한명회를 "나의 장자방(張子房)"이라고 극찬했을 만큼 신뢰했습니다. 이후 한명회는 딸 둘을 왕실(예종·성종)에 시집보내 사돈 관계를 맺었고, 영의정까지 오르며 세조 치세의 최고 권신이 되었습니다.

Q. 한명회의 묘는 어디에 있나요?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속창리 11-1에 위치합니다. 묘역에는 한명회와 부인 여흥 민씨의 묘소, 신도비(서거정 비문), 재실, 사당 충모사가 함께 있습니다. 2024년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인근에 있어 접근이 비교적 용이합니다.

Q.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 한명회는 누가 연기했나요?

배우 유지태가 한명회 역을 맡았습니다. 기존 사극에서 왜소하게 묘사되던 이미지를 탈피해, 압도적인 체격과 카리스마를 갖춘 한명회를 새롭게 구현했습니다. 영화는 2026년 2월 4일 개봉하여 500만 관객을 돌파했으며, 유지태의 연기는 "역대 가장 강렬한 한명회"라는 호평을 받았습니다.

Q. 압구정동 지명이 한명회와 관련이 있나요?

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狎鷗亭洞)의 지명은 한명회가 세운 정자 '압구정(狎鷗亭)'에서 유래했습니다. '물새들이 희롱하는 정자'라는 뜻으로, 한강변 경관이 수려한 이 정자는 당대 최고의 명소였습니다. 중국 명나라 사신들도 방문하러 올 만큼 유명했으나, 그 자신은 끝내 은퇴하지 못하고 사망할 때까지 정계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Q. 한명회와 단종의 관계는 어떻게 정리할 수 있나요?

한명회는 단종의 보호 세력을 제거하고(계유정난), 세조에게 왕위를 양위하도록 압박하고, 사육신의 복위 운동도 사전에 차단했습니다. 결국 금성대군 복위 시도 발각 후 단종의 사약 집행까지 이어지는 과정 전반에 그림자처럼 개입한 인물입니다. 단종에게 한명회는 단순한 정적이 아니라 왕좌와 목숨 모두를 앗아간 운명의 설계자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참고 출처

조선왕조실록(국사편찬위원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 · 우리역사넷(국사편찬위원회) · 디지털천안문화대전 · 나무위키 한명회 항목 · 위키백과 한명회 항목 · 인천투데이(2024.07.02) · NYCultureBeat 왕과 사는 남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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