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상호는 배우 하영의 증조부이자 대한제국 말기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서양의학 의사입니다. 고종의 진료에 참여한 근대 의료인이지만, 1916년 친일 단체로 규정된 대정친목회의 평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린 기록도 확인됩니다. 안상호를 볼 때 가장 먼저 구분해야 할 것은 ‘근대 의료에 기여한 의사’라는 이력과 ‘일제의 통치에 협조한 단체에서 활동한 기록’이 한 인물에게 함께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배우 하영의 소속사도 처음에는 친일 의혹을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지만, 2026년 8월 11일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 기록을 확인했다며 기존 입장을 정정하고 사과했습니다.
목차
- 배우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는 어떤 인물인가?
- 안상호가 고종을 진료했다는 이야기는 사실인가?
- 안상호가 이완용을 치료해 살렸다는 기록은 무엇인가?
- 안상호는 송병준·이완용의 대정친목회에서 무슨 역할을 했나?
- 안상호 친일 논란은 어디까지 사실로 확인됐나?
배우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는 어떤 인물인가?
안상호는 1872년에 태어나 1927년에 사망한 의사로, 본관은 순흥 안씨이며 호는 해강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일본 도쿄자혜의원 의학교(東京慈恵医院医学校)에서 서양의학을 공부한 뒤 1902년 졸업하고 귀국해 의료·교육 분야에서 활동했습니다.
| 구분 | 안상호 프로필 |
| 이름 | 안상호(安商浩) |
| 출생 | 1872년 |
| 사망 | 1927년 |
| 본관 | 순흥 안씨 |
| 호 | 해강(海岡) |
| 직업 | 의사·의학교육자 |
| 학력 | 일본 도쿄자혜의학전문학교 졸업 |
| 주요 분야 | 서양의학 진료·의학 교육 |
| 왕실 관련 기록 | 대한제국 말기 궁중 촉탁의로 출입 |
| 배우 하영과의 관계 | 증조부 |
| 대정친목회 경력 | 1916년 결성 당시 평의원 명단 등재 |
| 친일인명사전 수록 여부 | 수록되지 않음 |
안상호가 활동한 시기는 한의학 중심의 의료체계에 서양의학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던 전환기였습니다. 국내에서 서양의학 교육을 받은 의사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과 서구에서 의학을 배운 초기 의료인은 관립 의료기관, 의학교, 왕실 진료에서 여러 역할을 맡았습니다.

안상호는 귀국 후 의학교 교육과 진료에 참여했고, 서울에서 서양식 진료소를 운영한 초기 한국인 의사 가운데 한 명으로 평가됩니다. 일부 기사와 방송에서는 그를 ‘한국 최초의 개업의’ 또는 ‘한양에서 처음 양의원을 연 의사’라고 소개하지만, 초기 근대의료의 ‘최초’ 기록은 개원 형태와 의사 자격 기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초기 한국인 서양의학 의사’라는 표현이 가장 안전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동제의학교’ 항목에는 안상호와 유병필이 1910년 설립된 동서의학강습소에서 서양의학 강사를 맡았다는 기록도 나옵니다. 이는 안상호가 개인 병원 진료뿐 아니라 근대 의료교육에도 참여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배우 하영은 방송에서 증조부부터 할아버지, 아버지, 언니까지 의사의 길을 걸은 ‘4대째 의사 집안’을 소개했습니다. 이 발언을 계기로 증조부가 안상호라는 사실이 알려졌고, 소속사도 두 사람의 증조부·증손 관계를 공식적으로 인정했습니다.
안상호가 고종을 진료했다는 이야기는 사실인가?
안상호가 대한제국 말기 궁중에 출입하며 왕실 진료에 참여했다는 내용은 역사 자료로 뒷받침됩니다. 다만 이를 ‘고종의 전담 주치의’라는 의미로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태의원’ 항목에는 융희 연간 의학교 교관 안상호가 촉탁의로 궁중에 출입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융희는 순종 재위기에 사용된 연호이므로, 이 기록은 안상호가 대한제국 말기 왕실 의료체계에 참여한 서양의학 의사였다는 의미입니다.


당시 왕실 의료는 한 명의 주치의가 모든 진료를 맡는 지금의 전담의 개념과 달랐습니다. 태의원 소속 한의 출신 전의와 외국인 의사, 서양의학을 배운 한국인 의사들이 환자의 상태와 시기에 따라 함께 진료에 참여했습니다. 따라서 안상호를 ‘왕실 진료에 참여한 궁중 촉탁의’로 설명하는 것이 자료에 가장 가깝습니다.
배우 하영 역시 방송에서 증조부가 고종의 주치의였다고 단정하지 않고, 당시 양의학 병원이 드물어 고종이 질환이 있을 때 진료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이 설명은 ‘전담 주치의’와 ‘왕실 진료 참여 의사’를 구별한 것입니다.
1919년 고종이 덕수궁 함녕전에서 갑자기 사망한 뒤 일본이 독살했다는 소문이 널리 퍼졌습니다. 안상호 역시 고종의 상태를 살핀 의료진과 관련해 이름이 거론되면서 온라인에서는 ‘고종 독살에 연루됐다’는 주장까지 확산했습니다.
그러나 고종 독살설은 당시부터 널리 유포된 의혹일 뿐 안상호가 독살을 실행하거나 가담했다는 증거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고종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독살설이 3·1운동을 촉발한 사회적 배경 가운데 하나였다는 사실과 특정 의사를 독살범으로 지목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안상호가 이완용을 치료해 살렸다는 기록은 무엇인가?
안상호가 1909년 독립운동가 이재명의 공격으로 중상을 입은 이완용의 치료에 참여했다는 내용은 역사학자의 연구 자료에 등장합니다. 다만 여러 의료진이 참여한 치료였으며 안상호 혼자 수술해 이완용을 살렸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1909년 12월 22일 이재명 의사는 서울 명동성당 앞에서 이완용을 단도로 공격했습니다. 이완용은 어깨와 복부 등에 중상을 입었지만 치료를 받고 살아남았고, 이재명 의사는 체포된 뒤 1910년 사형을 선고받아 순국했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 수록된 박영석의 논문 ‘이완용 연구’에는 이완용을 치료한 의료진 가운데 안상호의 이름이 기록돼 있습니다. 당시 한성병원과 안동병원, 대한병원 등의 의사와 전의가 치료에 참여했고, 이완용은 흉부 수술을 받은 뒤 목숨을 건졌습니다.
이 기록이 알려지면서 안상호가 ‘독립운동가가 처단하려 했던 이완용을 살린 의사’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의료인이 부상자를 치료했다는 행위만 떼어놓고 친일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신중해야 합니다. 의사의 진료는 환자의 정치적 성향과 별개로 생명을 다루는 직업적 행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안상호 친일 논란에서 더 직접적인 판단 자료는 이완용 치료 자체보다 대정친목회 평의원 활동입니다. 이완용 치료는 역사적 맥락을 보여주는 기록이지만, 안상호가 어떤 정치적 목적과 의도로 진료했는지까지 해당 기록만으로 입증하지는 못합니다.
| 쟁점 | 확인된 사실 | 판단할 때 주의할 점 |
| 이재명의 이완용 공격 | 1909년 12월 22일 발생 | 독립운동가의 친일파 처단 시도 |
| 안상호의 역할 | 치료에 참여한 의료진 중 한 명 | 단독 집도의라는 뜻은 아님 |
| 이완용의 생존 | 수술과 치료 후 생존 | 여러 의료인의 공동 치료 |
| 친일 판단과의 관계 | 논란의 배경 자료 | 진료 행위 하나만으로 친일을 확정하기 어려움 |
| 직접적인 친일 논란 근거 | 대정친목회 평의원 기록 | 조직의 성격과 직책을 함께 봐야 함 |
이완용을 살린 의료진이라는 사실이 정서적으로 불편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이재명 의사가 처형된 반면 이완용은 살아남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역사적 평가에서는 감정적 인상과 입증 가능한 행위를 분리해야 합니다. 안상호를 평가할 때도 치료 기록보다 이후 어떤 단체에서 어떤 직책을 맡았는지가 더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안상호는 송병준·이완용의 대정친목회에서 무슨 역할을 했나?
안상호는 1916년 11월 29일 대정친목회가 결성될 당시 평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대정친목회의 정식 명칭은 대정실업친목회이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 조직을 1916년 서울에서 결성된 친일 단체로 규정합니다.
대정친목회는 이름만 보면 사업가들이 정보를 교환하는 실업인 친목단체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단체의 목적과 실제 활동은 일제가 조선의 유력 인사와 자산가를 묶어 식민통치에 순응하도록 유도하고, 조선인과 일본인의 결합을 뜻하는 ‘일선융화’를 선전하는 데 있었습니다.

단체가 표면적으로 내세운 것은 상호 친목, 산업 발달, 교육 보급, 문화 향상이었습니다. 하지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를 민중의 반일 독립 의식을 일제가 허용하는 실력양성 방향으로 왜곡하려는 정치 선전이라고 설명합니다.
안상호가 맡은 평의원은 단순히 이름만 올린 일반 회원과는 구별되는 직책입니다. 평의원은 조직의 운영과 의견 결정에 참여하는 간부급 자리였기 때문에 역사학계에서는 이 명단 등재를 친일 행위를 판단하는 의미 있는 기록으로 봅니다.

이완용과 송병준 역시 대정친목회와 연결된 대표적인 친일 인물입니다. 이완용은 이후 개편된 조직에서 고문으로 이름을 올렸고, 대정친목회는 송병준을 통해 신문을 일선융화의 선전 수단으로 활용하려 한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단체는 3·1운동 이후 조선귀족과 대지주, 예속자본가들이 참여하는 친일 조직으로 성격을 더욱 분명히 드러냈습니다.
| 구분 | 내용 |
| 정식 명칭 | 대정실업친목회 |
| 이칭 | 대정친목회 |
| 결성 | 1916년 서울 |
| 역사적 성격 | 일제강점기 친일 단체 |
| 표면적 목표 | 친목·산업 발달·교육 보급·문화 향상 |
| 실제 정치적 기능 | 식민통치 순응과 일선융화 선전 |
| 안상호의 지위 | 결성 당시 평의원 |
| 관련 인물 | 이완용·송병준·민영기·윤치호·유병필 등 |
안상호 개인의 생활상을 다룬 당시 신문도 논란의 근거가 됐습니다. 1918년 조선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는 일본인 아내와 결혼해 일본식으로 생활하는 안상호의 가정을 ‘내지화’ 사례로 소개했습니다. 내지화는 조선인을 일본 본토 사람처럼 동화시키려 했던 식민지 정책의 표현입니다. 사진 옆 제목에는 '일선동체의 가정' 이라고 명문화 되어 있기도 합니다.

당시 기사에는 안상호가 자신을 일본인과 같다고 표현하고, 조선 옷을 입지 않으며 일본인들과 주로 교류한다는 취지의 내용도 실린 것으로 보도됐습니다. 일본인과의 결혼이나 일본식 생활 자체를 곧바로 친일 행위로 규정할 수는 없지만, 그의 생활상이 조선총독부의 동화정책을 선전하는 자료로 활용됐다는 점은 역사적 평가에서 함께 살펴볼 부분입니다.
안상호 친일 논란은 어디까지 사실로 확인됐나?
안상호가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등재됐다는 사실과 대정친목회가 친일 단체였다는 사실은 확인됩니다. 다만 안상호는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자는 아니며, 국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서도 확인되지 않습니다.
여기서 ‘친일인명사전에 없으므로 친일 행위가 전혀 없다’는 결론과 ‘친일 단체 명단에 있으므로 국가가 공인한 친일반민족행위자다’라는 결론은 모두 정확하지 않습니다. 민간 연구기관의 사전 수록, 국가위원회의 공식 결정, 학계의 역사적 평가는 서로 다른 기준과 절차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이종찬 전 독립기념관장은 안상호가 대정친목회 평의원으로 참여했다면 이를 친일 행위로 보는 것이 맞으며,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친일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는 취지로 평가했습니다. 반면 일부 연구자는 안상호의 전체 행적을 평가하려면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습니다.
논란의 핵심은 배우 하영이 조상의 행위에 책임을 져야 하느냐는 문제가 아닙니다. 후손은 태어나기 전에 벌어진 조상의 행위를 선택할 수 없으며, 혈연만으로 역사적 책임을 물을 수 없습니다. 이번 논란이 커진 직접적인 이유는 방송에서 증조부의 의료 경력을 긍정적으로 소개한 직후 친일 단체 활동 기록이 발견됐고, 소속사가 충분한 검증 없이 이를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기 때문입니다.
소속사는 2026년 8월 10일 증조부가 안상호라는 사실은 인정하면서 친일 의혹은 사실무근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다음 날인 8월 11일 안상호가 1916년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올라 있는 기록을 확인했다며 초기 입장을 철회하고 사과했습니다.
| 날짜 | 하영 측 입장과 확인 내용 |
| 2026년 8월 7일 | 하영이 방송에서 4대째 의사 집안과 증조부의 왕실 진료 경력을 소개 |
| 2026년 8월 10일 | 소속사가 증조부는 안상호가 맞지만 친일 의혹은 사실무근이라고 답변 |
| 2026년 8월 11일 |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 기록을 확인하고 기존 입장을 정정·사과 |
안상호 관련 논란을 사실 중심으로 정리하면 결론은 세 가지입니다.
- 첫째, 안상호는 배우 하영의 증조부이자 대한제국 말기 왕실 진료와 근대 의료교육에 참여한 초기 서양의학 의사입니다.
- 둘째, 그는 친일 단체로 규정된 대정친목회에서 평의원으로 활동한 기록이 있습니다.
- 셋째,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지는 않았지만 사전 미수록이 대정친목회 활동 기록을 없애는 것은 아닙니다.
고종 독살 가담설처럼 증거가 확정되지 않은 주장까지 사실로 확대하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반대로 근대 의료에 기여했다는 이유만으로 확인된 친일 단체 활동을 지우는 것도 균형 잡힌 평가가 아닙니다. 한 인물 안에 존재하는 의료사적 성취와 식민지 협력 기록을 각각 사실대로 보는 것이 이번 논란을 이해하는 가장 정확한 방법입니다.
FAQ
배우 하영의 증조부가 의사 안상호인 것은 사실인가요?
사실입니다. 배우 하영의 소속사는 하영의 증조부가 대한제국 말기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의사 안상호라고 공식적으로 확인했습니다.
안상호는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됐나요?
안상호는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자가 아닙니다. 다만 1916년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린 기록은 확인됐으며, 사전 미수록과 개별 친일 행위 기록은 구분해야 합니다.
대정친목회는 친일 단체가 맞나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대정실업친목회를 1916년 서울에서 조직된 친일 단체로 규정합니다. 일선융화와 식민통치 순응을 선전하는 데 활용된 조직입니다.
안상호가 이완용을 살린 의사인가요?
안상호는 1909년 이재명 의사의 공격으로 중상을 입은 이완용을 치료한 여러 의료진 가운데 한 명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안상호가 혼자 수술해 살렸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안상호가 고종을 독살했다는 주장은 사실인가요?
입증된 사실이 아닙니다. 안상호가 궁중 촉탁의로 왕실 진료에 참여한 기록은 있지만 고종 독살에 가담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확정된 증거는 없습니다.
자료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대정실업친목회 (최종수정 2023.02.07)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태의원 (날짜 미표기)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동제의학교 (날짜 미표기)
-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 — 안상호(安商浩) (날짜 미표기)
- 국사편찬위원회 국사관논총 — 박영석, 이완용 연구 (1992)
- 헤럴드경제 — 하영 측 “사실무근” 하루 만에 뒤집었다…“친일 단체 기록 확인, 사과드린다” (2026.08.11)
- 스포츠경향 — 하영 증조부 친일 ‘사실무근?’ 역사학계 “친일 맞다” (2026.08.10)
- 머니투데이 — 배우 하영 증조부 “나는 일본인과 같아”…고종 독살설까지 ‘파묘’ (2026.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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