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욱 박사는 한국인 최초로 국제기구 수장에 오른 인물로,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세계보건기구(WHO) 제6대 사무총장을 지낸 의학자다. 그는 서울대 의대 재학 중 한센병 환자를 돌보던 경험을 계기로 평생을 국제보건 현장에서 헌신했고, 서거 20주기를 맞은 2026년 8월 15일 KBS 1TV '다큐On'을 통해 그의 삶과 유산이 다시 조명됐다. 아래에서 그의 프로필부터 한센병 봉사 계기, WHO 사무총장이 되기까지의 경력, 재임 중 업적, 서거 경위까지 순서대로 정리한다.
목차
- 이종욱 박사 프로필, 나이·고향·학력
- 이종욱 박사는 왜 한센병 환자를 돌보게 됐나
- 이종욱 박사, 어떻게 WHO 사무총장이 됐나
- 이종욱 박사의 WHO 사무총장 재임 업적
- 이종욱 박사는 어떻게 세상을 떠났나
- FAQ
이종욱 박사 프로필, 나이·고향·학력
이종욱 박사는 1945년 4월 12일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에서 태어나, 2006년 5월 22일 6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덕수초등학교와 경복중학교,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처음에는 의대 진학에 실패해 다른 길을 걸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 항목 | 내용 |
| 이름 | 이종욱(李鍾郁) |
| 출생 | 1945년 4월 12일,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
| 별세 | 2006년 5월 22일, 향년 61세 |
| 고향 | 서울 |
| 학력 | 경복고등학교 →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건축공학과(공학사)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학사) → 서울대학교 대학원 산업공학과(공학석사) → 미국 하와이대학교 보건대학원(전염병학 석사) |
| 주요 직책 | 세계보건기구(WHO) 제6대 사무총장(2003~2006) |


이 표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그가 처음부터 의대생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는 고교 졸업 후 의대 입시에 낙방해 군에 입대했고, 제대 후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건축공학과에 진학해 1968년 학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에도 의사가 되고 싶다는 뜻을 놓지 않았던 그는 1970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다시 도전해 합격했고, 1976년 졸업하며 뒤늦게 의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런 이력은 그가 단번에 순탄한 길을 걸은 것이 아니라, 여러 차례의 도전과 우회 끝에 자신의 소명을 찾아간 인물이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종욱 박사는 왜 한센병 환자를 돌보게 됐나
이종욱 박사가 한센병 환자를 돌보게 된 계기는 서울대 의대 재학 시절 경기도 안양의 성 라자로 마을에서 시작한 봉사활동이었다. 그는 의대생 신분으로 이곳을 찾아 한센병 환자들을 직접 간호하며 봉사했는데, 이 경험이 이후 그의 평생 진로를 결정짓는 전환점이 됐다.



특히 그는 이 성 라자로 마을에서 한국의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던 일본인 여성 가부라키 레이코를 만나 인연을 맺었고, 1976년 12월 18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노기남 대주교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렸다. 의대 졸업 후 그는 춘천의료원에서 근무하다 사직하고, 1979년 미국 하와이대학교 보건대학원으로 유학을 떠나 1981년 전염병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그는 남태평양 사모아로 건너가 현지 병원에서 근무했는데, 이 시기 현지인들 사이에서 '닥터 리'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신뢰를 쌓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1983년 WHO 남태평양지역 사무처의 한센병 퇴치 팀장으로 합류하면서, 국내 한 마을에서 시작된 봉사가 국제기구에서의 활동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됐다.
이종욱 박사, 어떻게 WHO 사무총장이 됐나
이종욱 박사가 WHO 사무총장이 된 것은 1983년 입사 이후 23년에 걸쳐 WHO 내부에서 쌓아온 경력의 결실이었다. 그는 한센병 전문가로 시작해 조직 내 핵심 요직을 두루 거치며 국제보건 행정가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이 표는 그가 WHO에 입사한 이후 사무총장에 오르기까지 거친 주요 경력을 정리한 것이다.


| 시기 | 직책·활동 |
| 1983~1994년 | WHO 서태평양지역사무처 질병예방관리국장 겸 한센병 관련 자문관 |
| 1994~1998년 | WHO 지역사무처 글로벌 백신프로그램 및 어린이 백신사업 총괄 국장 |
| 1998~2000년 | WHO 지역사무처 자원동원 및 대외협력 담당국장 겸 정책자문관 |
| 1999년 | 브룬틀란 WHO 사무총장 특별보좌관 지명 |
| 2000년 12월 | WHO 결핵국장 임명 |
| 2003년 1월 28일 | WHO 집행이사회에서 차기 사무총장 후보로 지명 |
| 2003년 5월 21일 | WHO 총회에서 제6대 사무총장으로 인준(투표국 151개국 중 149개국 찬성) |
| 2003년 7월 21일 | 제6대 WHO 사무총장 정식 취임 |
이 표에서 알 수 있듯 그는 서태평양지역사무처에서 한센병 자문관으로 출발해, 백신사업과 자원동원 업무를 거쳐 결핵국장에 이르는 단계를 밟으며 조직 전반의 실무 경험을 쌓았다.



2000년 결핵국장으로 임명된 뒤에는 국제의약품기구를 설립해 북한에 결핵약 6만 명분을 지원하고, 22개국의 결핵 고위험국을 대상으로 퇴치 사업을 이끄는 등 구체적인 성과를 냈다. 이런 실무 역량을 인정받아 2003년 그는 각국에서 지원한 80여 명의 후보와 경쟁한 끝에 7차 투표까지 가는 접전 속에서 사무총장으로 선출됐는데, 이는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유엔 전문기구의 수장을 배출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이종욱 박사의 WHO 사무총장 재임 업적
이종욱 박사가 WHO 사무총장으로 재임하며 남긴 대표 업적은 세계 최초의 보건 분야 국제 협약인 담배규제기본협약(FCTC) 채택을 주도한 것과, 팬데믹 대응 체계의 기초가 된 국제보건규칙(IHR)을 2005년 개정한 것이다. 그는 재임 기간 내내 결핵, 소아마비, 에이즈처럼 저개발국에서 특히 큰 피해를 낳는 질병 퇴치에 집중했다.



그는 취임 당시 2005년까지 전 세계 300만 명의 에이즈 환자에게 항에이즈 바이러스 치료제를 보급하겠다는 '3 by 5' 사업을 공약하고 이를 추진했으며, 서태평양 지역의 소아마비 박멸을 주도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런 성과와 현장 중심의 리더십 덕분에 그는 전 세계로부터 '행동하는 사람(man of action)'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국내에서는 아시아의 슈바이처로 불리기도 했다.




정부는 이런 공로를 인정해 2002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그리고 서거 이후인 2006년에는 국민훈장 중 최고 등급인 무궁화장을 추서했다. 이 밖에도 그는 2003년 한국언론인연합회 자랑스런 한국인대상, 2005년 하와이대학교 자랑스런 동문 및 서울대학교 자랑스러운 서울대인 선정 등 국내외에서 다양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종욱 박사는 어떻게 세상을 떠났나
이종욱 박사는 2006년 5월 20일 세계보건총회 개막을 앞두고 준비 업무를 보던 중 과로로 인한 지주막하출혈로 쓰러졌다. 그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곧바로 수술을 받았지만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고, 이틀 뒤인 5월 22일 61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그의 서거 이후 장례는 특별히 WHO장으로 치러졌으며, 5월 24일 스위스 제네바의 노트르담 성당에서 장례식이 진행됐다. 그의 유해는 현지에서 화장 절차를 거친 뒤 한국으로 돌아와 대전현충원 국가유공자묘역에 안장됐다. 생전에는 특정 종교가 없었지만 병석에서 세례를 받아 천주교 신자로 세상을 떠난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서거 이후 WHO와 한국 정부는 매년 그의 업적을 기리는 행사를 이어오고 있는데, 2026년은 서거 20주기가 되는 해로 지난 5월 20일 스위스 제네바 WHO 본부에서 한국을 비롯한 6개국 보건부가 공동 주최한 추모식이 열렸고, 8월 15일 KBS '다큐On'을 통해서도 그의 삶과 유산을 재조명하는 다큐멘터리가 방송됐다.

또한 그의 이름을 딴 '이종욱 기념 공공보건상'이 2009년부터 매년 WHO와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KOFIH)이 공동으로 제정해, 공공보건 분야에 기여한 인물이나 기관에 상금을 수여하며 그의 정신을 잇고 있다.
FAQ
Q1. 이종욱 박사는 언제 태어나고 세상을 떠났나요?
1945년 4월 12일 서울에서 태어나, 2006년 5월 22일 61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Q2. 이종욱 박사의 학력은 어떻게 되나요?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건축공학과에서 학사 학위를 받은 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의학사, 서울대 대학원에서 공학석사, 미국 하와이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전염병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Q3. 이종욱 박사는 언제 WHO 사무총장이 됐나요?
2003년 5월 21일 WHO 총회에서 제6대 사무총장으로 인준받았고, 같은 해 7월 21일 정식 취임했다.
Q4. 이종욱 박사의 대표 업적은 무엇인가요?
담배규제기본협약(FCTC) 채택 주도, 2005년 국제보건규칙(IHR) 개정, 소아마비 박멸과 결핵·에이즈 퇴치 사업 추진 등이 대표적이다.
Q5. 이종욱 박사는 왜 다시 조명되고 있나요?
2026년이 그의 서거 20주기가 되는 해로, 스위스 제네바 WHO 본부 추모식과 KBS '다큐On' 방송을 통해 그의 삶과 유산이 재조명되고 있다.
자료 출처
- 위키백과 — "이종욱 (의료인)" 항목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 — "이종욱" 항목
- 외교부 — "세계보건기구(WHO) 총회, 이종욱 사무총장 인준" 보도자료
- 연합뉴스(다음뉴스) — "'행동하는 사람' 이종욱 박사 서거 20주기…WHO서 추모식" (2026.05.21)
- KBS 연예뉴스(kstar.kbs.co.kr) — "[다큐On] 故 이종욱 박사가 남긴 족적" (2026.08.15)
- 이데일리 — "KBS1 '다큐온', 故 이종욱 박사 서거 20주기 조명" (2026.08.15)
- 인천in — "전 WHO 사무총장 이종욱 박사를 아십니까?" (2020.05.05, 배경 파악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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